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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노트

작성자 사진Jingoo Lee

평신도를 깨운다

옥한흠


6장 교회는 무엇인가?

1. 교회의 정의

ž 교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에클레시아(eklesia) –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 혹은 회중을 가리키며 회중이 모이는 과정과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공동체를 다 포함하는 의미가 있다.

ž 교회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새로운 백성의 무리이며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로 불린다.

ž 교회는 예수님이 오셔서 실현하신 하나님 통치의 유기적, 제도적, 세상적인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가 포괄적인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의미한다면 교회는 그 통치권 안에 속한 과도기적 제도라고 보아야 한다. 교회는 미래에 주님이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겸손하고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 왕이 오실 때 교회는 왕국을 물려받을 것이고 그 왕국은 온 우주에 실현될 것이다.

2. 소망이 빠져 있다.

ž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교회에는 그 존재 이유라 할 만한 독특한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명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다.

ž 그러므로 이 소명에 대한 암시나 언급이 없다면 그것이 천상의 교회에 대한 정의는 될 수 있어도 지상 교회를 위해서는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지상 교회를 천상의 교회로 착각하게 만든 전통적인 교회 정의에 문제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ž 지상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특권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3. 신약성경의 교회는 지역 교회다.

ž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교회 그 자체이며, 그 실체의 확실한 표현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지역 교회에 몸담고 섬기는 우리는 모두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어야 한다.

ž 예수님은 크기로써 자기 교회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어떤 자들이 모이느냐에 관심을 가지신다.

ž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각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교회를 목양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작고 초라할지라도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7장 도전받는 전통적인 교회론

1. 몇 가지 비판들

ž 사회 구조가 정적이다, 동적이다 하는 말은 교회가 처한 상황이 기독교 우호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ž 중세기는 정적인 상황으로 세상이 이미 복음의 지배 아래 있는 듯이 보였던 그들의 처지에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가 복음을 저해야 하는 긴박성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ž 초대 교회는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지 않으면 교회 자체의 존립마저 보장되지 않는 긴박한 동적인 상황이었다.

ž 종교개혁자들의 의도가 어디 있었든지 간에 그들의 교회론을 계승한 후대의 목회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평신도를 선교의 소명자로 무장시키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2. 그들의 관심사는 교회의 순결

ž 교회는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이 만든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ž 칼빈이나 루터가 당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의 순결이었다. 그들은 말씀 선포, 성례전 집례, 권징의 집행에서 순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선언했다.

ž 칼빈은 세상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가르쳤지만, 이 일을 위해 교회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우리가 칼빈이나 루터에게 물려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는 개혁의 정신이다.

ž 어느 시대나 교회는 성경 말씀이 허용하는 한계 조건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시대의 요구에 대처할 자유가 있다.

ž 오늘의 교회는 선교를 위한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평신도를 초대 교회의 제자들처럼 복음의 증인으로, 사랑의 봉사자로 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교회의 사도적 본질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그것을 현대 교회에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8장 교회의 사도적 본질

1. 사도성에 대한 오해

ž 한스 퀑의 교회론; 지상 교회는 사도의 계승자로서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평신도를 깨우는 일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으로 볼 수 있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 무엇이 사도성인가?

ž 사도성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다는 데서 시작된다. 사도는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교회가 사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사도적이라고할 때는 사도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음을 말한다.

ž 교회가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다른 본질마저 그 의미를 잃는다. 사도성은 다른 본질보다 더욱 기본이요, 다른 본질을 평가하는 표준이다.

ž 사도적인 교회라면 그것은 성경에 일치하는 교회다. 성경을 떠나 사도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권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도적이라는 말과 성경적이라는 말은 서로 동일한 의미가 있다.

3. 사도적 계승

ž 이제 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사도의 교훈과 사역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면 지금은 누가 사도의 계승자가 될 수 있는가? 오직 한 가지 기본적인 대답이 있는데, 소수의 개인이 아닌 모든 교회가 그 계승자다. 사도적 계승은 성령의 것이다.

ž 사도들이 성령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계승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4. 사도의 교훈을 계승한다

ž 교회가 사도의 계승자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 첫째는 사도들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도적 계승은 이 사도들의 증거를 듣고 존경하고 믿고 고백하며 따를 때 성취된다.

ž 교회가 사도의 계승자가 되려면 사도가 전해준 교훈을 그대로 받아 고백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성을 교회 본질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사도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5. 사도의 사역을 계승한다

ž 둘째로 전 교회가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도성은 교회가 스스로 복종해야 할 문제다. 사도들이 순종하던 형태의 모든 봉사를 다 포함한다. 교회가 된다는 것과 선교를 한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ž 사도성은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는 이 사실을 교회가 복종을 통해 계속 인정하고 나타내는 데서 계승된다.

ž 지상 교회 자체가 그 본질상 사도적 소명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교회의 주체인 평신도가 그 소명에서 자유하다는 말인가?

6. 하나님의 뜻

ž 뜻이라는 단어가 단수인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목적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려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일이다.

ž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교회가 되고자 힘쓰는 일은 교회가 하는 어떤 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ž 세상을 위한 사도적 소명을 외면하는 것은 왕의 재림과 영원한 왕국의 실현이라는 소망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7. 성령과 사도성의 관계

ž 교회의 사도적 본질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성령은 오셔서 선택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사도들의 증거를 그대로 받아, 믿고 고백하게 하신다. 그리고 구원받아야 할 다른 양들을 위해 먼저 부른 그들을 소명에 응하게 하시고 능력으로 무장시켜주신다.

ž 성령이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즉 모든 믿는 자의 입을 열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

ž 평신도를 깨운다는 것은 그들 각자가 사도의 사역을 물려받은 소명자임을 고백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9장 교회의 존재 이유

1.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ž 교회의 첫째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전인격적 제사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 같이 한 몸을 이루어,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

ž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배 따로 말씀 공부 따로라는 생각은 예배를 어떤 형식의 굴레에 묶어 놓는 일이나 다름없다. 참 예배자는 가만히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를 철저하게 훈련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배 일변도의 목회는 참 예배자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방해한다.

2.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ž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다. 평신도가 부름받은 가장 큰 봉사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 즉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ž 만인 제사상직; 제사장에게는 네 가지의 영광스러운 특권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특권이다. 둘째는, 영적 제사를 드리는 특권이다. 셋째는, 말씀을 증거하는 특권이다. 넷째는, 중보하는 특권이다. 만인 제사장직은 신자들이 세상 앞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증거하고, 세상에 봉사하는 일에 생명을 바치게 하려고 부르신 소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각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임을 알고 있다. 각 사람이 다른 형제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형제들의 고통과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들의 죄짐을 같이 지며, 매사에 같이 동거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 만인 제사장직이란 신자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며, 그 대신 자기는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사는 성도의 교제를 말한다

ž 성경에는 신자가 하나님께 드릴 다양한 제물의 종류가 나와 있는데, 복음의 증거, 찬송과 형제를 위한 봉사, 순교의 제물, 성도들의 기도 등이 그것이다.

3. 양육하는 어머니

ž 마지막으로 교회는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르치는 교사로는 교사와 목사를 주셨고 가르치는 내용으로는 성경 말씀을 주셨고 또 가르치는 방법으로 탁월한 모델을 주셨다.

4. 불가분의 관계

ž 예배와 전도와 훈련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이 세 가지를 균형 있게 다룰 때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의 목적을 기대할 수 있다.

ž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광스러운 예배와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축제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성장, 이 모두를 통해 영광받길 원하신다.


10-12 장

저자는 제자도를 믿는 자의 삶이요, 걸어가야 할 과정이요. 끝까지 지향해야 할 목표요, 동시에 교회의 사역 그 자체라고 말한다. 제자도는 나 자신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평생 몸과 마음에 소중히 지니고 살아가야할 삶의 나침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지체로 섬기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사역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그 나침반의 바늘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교회가 방향을 잃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할 때 제자도라는 나침반은 교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느꼈다. 또한 나 개인의 삶의 여정 가운데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함도 느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제자도를 사도성이라는 교회 본질에 일치하면서, 평신도의 자아상을 재건하는 성경적 기본 전략이라고 말한다. 제자도는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는 평신도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기준을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따라서 온전한 제자의 모습을 향해 가는 그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 혼자의 힘으로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교회를 만드셨을 것이다.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시켜 온전한 제자로 성장시켜 나가게 하신 것이다. 교회는 또한 훈련을 통한 제자의 성숙도에 따라 그에 합당한 일을 맡겨 봉사하고 섬기게 해야함을 알았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일을 맡기기 전에 먼저 그들을 훈련시켜 주님을 더 알아가게 하여 주님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저자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제자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 제자라는 이름을 열두 사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을 통해 하나님 백성이 될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여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임을 확신한다. 복음을 듣고 주님의 사람이 된 나도 주님의 제자로서 그 자랑스러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느낀다. 저자는 서신서에서 제자라는 이름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말하며 ‘온전한 자’가 제자도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온전한 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예수처럼 되고 예수처럼 살길 원하는 제자를 가리키는 말과 동일하다. 저자는 ‘온전한 자'는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추구하는 두 단계의 영적 완성의 여정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는 현세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온전함의 단계로 믿음의 발전, 인격의 성숙, 삶의 승리를 포함한다. 다른 단계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얻을 영화롭게 됨을 의미한다. 주님의 재림 때 완성될 제자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고대하며 주님께서 몸 된 교회를 통해 공급하시는 영적 영양분으로 나날이 성장해 가는 제자가 될 것을 결단한다. 또한 주님만 바라보므로 주님을 더욱 닮아가고 나를 통해 주님의 모습을 비추는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길 소망한다.


13장 믿는 자는 다 제자인가?

l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 모든 사람이 제자이다.

l 제자의 길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요, 또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무슨 프로그램이나 헌신도나 성숙도로 취사선택할 수 없다.

l 모든 믿는 자가 다 제자임에 틀림없지만, 제자의 삶에서 정도의 차이는 나타날 수 있다.

l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 사람은 새삼스럽게 제자가 되고자 하여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제자이기 때문에' 훈련을 받아야 한다.

l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내 '미완성'으로 남는다는 뜻이다. 완전무결하게 예수를 닮았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다'가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제자도는 성장하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14장 인격적 위탁자

l 제자라는 개념 안에는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동안 당신의 말씀과 삶의 모범으로 보여주신 몇 가지 중요 요소가 들어 있다. 인격적 위탁자, 증인, 종이라는 세 가지이다. 제자도는 이 세 가지 기본 요소를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말이다.

l 제자도의 세 요소는 예수님의 인격과 절대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주님을 떼어놓고는 그 의미와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

l 이들은 독립 요소가 아니라 상호 연관된 복합 요소다. 인격적인 위탁 없이는 제자도가 존재할 수 없고, 증인 됨 없이는 그 궁극적인 비전을 상실하며, 종이 되지 않고서는 제자도의 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l 예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이 인격적 위탁이다.

l 위탁한다는 것 :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전적 위탁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l 치러야 할 값

ž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 중 하나는 싸움이다. 예수를 따르는 생활에서 가정이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ž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제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사랑했던 욕망, 평안, 꿈 등을 다 버려야 한다. 제자는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헤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고난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ž 우리가 십자가를 지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자가 되신다

ž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생명을 바치는 모험이다

ž 제자가 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제자 됨이란 현세의 삶에서 흠 없는 완전함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쁨으로 예수를 본받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주님께 자기 삶을 위탁한 자다.

ž 제자로 불렸던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항상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한 사람이었다. 그 복종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였다.

l 독특한 인격적 관계

ž 신약에 나오는 제자라는 개념은 제자로 부름받은 자와 선생과의 인격적 연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모든 강조점이 선생 되신 예수님의 인격 위에 놓여 있다. 제자를 부른 이도 예수님이었고 당신과 제자의 관계를 완성하는 형식과 내용도 예수님이 주셨다.

l 가장 어려운 고비

ž 제자훈련 중에 가장 어려운 고비가 전적 위탁을 가르칠 때이다.

ž 무엇이 제자훈련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르게 하는 제자도에 동의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해산의 수고가 제자훈련이다.

15장 복음의 증인

l 제자의 궁극적인 사명

ž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위임한 궁극적인 일은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l 성령의 내적 충동

ž 초대 교회에서 제자라고 불리던 수천 명의 남녀들은 사도들과 다름없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내적 충동이 있었다. 그들의 내적 충동은 성령이 주는 것이었다.

ž 성령을 모신 사람이면 다 갖는 전도의 내적 충동과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히 받은 전도의 은사는 구별되어야 한다.

l 전도하라는 명령은 왜 없는가?

ž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성령의 내적 충동, 즉 성령의 사람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일종의 본능적 소산이다. 본능적인 것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충동은 명령을 앞지르기 마련이다.

l 말의 증거

ž 말로 전하는 복음이 빠진 증거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간혹 어떤 사람이 자기의 선한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가 입을 열지 않으면 자기 행위 속에 계신다고 생각하는 그 예수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가 아닐 수 있다.

ž 말로 전하지 않는 증거는 성경이 의미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ž 참 증거가 말로 전하는 데 있다고 해서 행위의 증거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말로 전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ž 건강한 제자훈련은 성령이 주시는 내적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운 증인들을 만들어 낸다.

ž 예수를 입으로 증거하는 사람치고 그 행위를 예수님처럼 선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16장 섬기는종

l 예수님의 모범

ž 예수님의 제자는 종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필연적인 일이다. 이는 아무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다.

ž 제자의 복은 자신이 종이며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데 있다. 아무리 섬기고 또 섬겨도 자기는 자랑할 것 없는 무익한 종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는 데서 제자의 영광이 따라온다.

ž 제자의 사명은 생명을 잃을 각오까지 하지 않으면 절대 완수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곳은 세상 임금이 주관하는 악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종 된 제자 입장에서는 생명을 내놓는 것이 사는 길이요. 반대로 생명을 아끼는 것은 죽는 길이 된다.

ž 종 된 직분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인격과 삶에 완전하게 위임된 것이며, 계속 실천해야 할 일이다. 종으로서 받은 고난은 제자도 보증서나 다름없다.

l 고백과 증거의 필연적 요구

ž 예수님에게 사랑이란 의지와 행동의 문제였다. 예수님은 행동이 결여된 사랑을 입에 담으신 일도 없고 그런 위선적인 사랑을 보이신 일도 없다.

ž 복음을 전하려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주는 것이며, 기꺼이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는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ž 예수님의 희생은 본받아야 할 하나의 모범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만사에 그의 본을 따르고 그가 행하신 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l 자원하는 종

ž 예수님의 제자에게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는 타인을 향한 가르침이기보다 '나는 종이며 사랑으로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임을 스스로 다짐하는 행위이며, 그것으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ž 예수님은 사랑의 능력을 말 속에 담아 다니지 않으시고 행동 속에 담고 계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원리인 것이다. 스스로 종의 몸을 입고 낮아지지 않는 곳에서는 십자가의 승리가 따라오지 않는다.

ž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 제자훈련을 시키는 목회자는 자신의 종 됨을 훈련생이 눈으로 보고 배우게 해야 한다.

l 제자훈련의 절정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반사되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작은 예수로서의 변화와 성숙을 세상으로 보게 하는데 있다..

17장 교회의 체질이 바뀐다

l 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할 수 있다

ž 주님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쓰임 받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더 기뻐하신다.

ž 교회는 하나님 백성이 영적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일하는 작업장으로, 십자가의 장병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병영으로, 곤고하고 억눌린 자들이 찾아오는 피난처로, 생의 폭풍을 만난 자들이 마지막 기대를 거는 등대로, 개인이 생명의 등불을 밝히고 우리를 통해 영적으로 사회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로 그 기능을 다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l 평신도의 자아상을 바로 정립할 수 있다

ž 교회의 체질은 평신도가 자신에 대해 어떤 자아상을 갖느냐에 따라 크게 개선될 수 있다. 평신도가 자기를 누구로 알며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곧 그 교회의 체질을 결정짓는다.

ž 평신도의 자의식을 제자도에 입각하여 바꾸어주라. 그리하면 교회의 체질이 몰라볼 정도로 바뀔 것이다.

l 보호 목회에서 훈련 목회로 전환할 수 있다

ž 양을 친다는 말에는 대단히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이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ž "지키게 한다"는 말에는 믿는 자가 그리스도를 닮는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생활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에 옮길 수 있기까지 계속 끌어주라는 적극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을 우리는 '훈련'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부른다.

ž 최선의 목회는 훈련을 통해 양을 강하게 만들어 스스로 생산하게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l 전 교회가 상호 사역하는 유기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ž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교회 안에서 몸을 위해 상호 사역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지체로 만든다.

l 교역자 중심 체제에서 평신도 중심 체제로 바꿀 수 있다

ž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로서 본연의 위치를 바로 찾아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교역자가 섬기는 교회라면 그것이 바로 평신도 중심의 체제다.

l 사역을 분담하는 평신도 지도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ž 여기서 말하는 사역은 안내 위원이나 전도회 회장직 같은 일이 아니다. 목회적인 사역, 다시 말하면 말씀과 기도로 형제들을 세우는 영적인 사역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들고 상처 입은 자들을 영적으로 치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l 지속적인 교회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ž 제자훈련으로 교회 체질이 정착되면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ž 더 나아가 제자훈련을 잘하면 목회자는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울 수 있다. 평신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던 전통적인 리더십에서 평신도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리더십으로 달라진다.

ž 성장하는 교회의 세 가지 힘; 첫째, 강한 교회는 엄격하다. 엄할수록 강하다. 둘째, 엄격함을 상실하는 교회는 자신의 힘도 상실한다. 셋째, 엄격함은 관대함으로 저하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교회를 엄격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평신도에게 부담이 된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18장 제자훈련의 목적

l 유감스러운 오해

'제자훈련은 성경공부다'라는 오해다. 제자훈련은 성경공부가 아니고 성경공부는 제자훈련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제자훈련을 '전도와 가르침에 유능한 평신도 기능인을 만들어내는 코스'처럼 생각하는 오해다. 제자훈련은 예수를 닮고 그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의 신앙 인격은 예수님이 제시한 표준에 따라 성숙함을 지향하고 있는가? 선교적인 책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을 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가?" 진정한 제자훈련은 평신도가 날마다 사회 속에서 성과 속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제사장의 소명을 분명히 가르친다.

셋째로, 제자훈련은 수준 있는 중산층 이상의 평신도에게만 가능하다는 오해다. 제자훈련의 열쇠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지 평신도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l 왜 제자훈련이라고 하는가?

기성 교회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교육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용어가 훈련이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자훈련에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훈련 방법을 설정해 두어야 하며, 훈련에 합당한 선택된 대상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훈련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실제적인 결과를 확실히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l 제자훈련의 목적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신자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예수처럼 되고 예수처럼 살기를 원하는 신앙인으로 만드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훈련의 주제며 표준이며 목표다.

제자훈련은 평신도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성령의 손에 부서지고 녹아져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시 빚어지는 과정에 있는 자들이다.

제자훈련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소명자로 만드는 작업이다.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복음의 전파자로, 진리의 교사로, 사랑의 치료자로 헌신하게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머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소명자로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l 성경의 원리에 가장 근접한 목회 방법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이면서 동시에 교사인 교역자를 주신 것은 바울이 가르쳐준 것처럼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기 위해서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하도록 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세워주는 것을 말한다

온전케 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 봉사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19장 누가 제자훈련을 시킬 것인가?

l 그것은 교역자의 책임이다.

제자훈련은 담임목사가 해야 한다.

교역자의 영성, 실력, 인격은 자기 안에 묻어둘 것이 아니라 평신도라는 토양에서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럴 때 교역자와 평신도가 다 같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l 먼저 제자가 되라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은 목회자 자신이 제자로 세워지는 실제적인 훈련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제자는 제자가 만드는 법이다.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들 수 없다.

l 필요한 목회 철학의 점검

제자훈련은 예배석에 나와 있는 평신도를 볼 때마다 그들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도의 계승자라고 여기는 믿음을 가진 지도자만이 손댈 수 있는 일이다

목회 철학은 제자훈련의 존폐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

목회자는 성도를 돌보는 목사인 동시에 성도를 훈련하는 교사인 것이다.

설교가 가르침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장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l 자신의 철학을 나누라

지도자는 자기가 확신하는 것, 자기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하는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인가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분명하게 본 것을 말하는 일이다.

목회 철학은 지도자가 손으로 잡은 것이요 눈으로 본 것이다.

지도자가 제자훈련의 꿈을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나누려면 사용하는 용어와 내용이 명료하고 미래 지향적이고 시각적이고 도전적이고 그러면서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철학을 공유하고 비전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기간에 목회자가 가장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두말 할 것 없이 설교와 기도이다.

교인이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대감으로 흥분한다면 그 설교는 성공적이다. 그리고 기도의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l 대상의 선택

기성 교회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제자훈련에 누구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심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장로들과 권사들을 택해야 한다

한두 명은 영적으로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끼워 넣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꺼꾸러지는 사건이 일어나면 제자반의 분위기가 금방 달라진다.

개척 교회에서 시작하는 처음 제자훈련은 몇 사람의 평신도 지도자를 키우는 데 목적이 있지만 그보다 목회자가 제자훈련을 그 교회의 기본적인 목회 방법으로 결정했다는 데 그 의의가 더 크다

초창기의 훈련이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아 힘들다고 해도 교역자는 절대로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l 집중의 원리

제자를 만드는 일은 교역자가 소수에게 자기 시간과 정력을 다 쏟는 봉사가 보장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먼저 교역자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단호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l 첫 제자반의 중요성

첫 제자반은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정성을 쏟아야 한다.

첫 제자반은 그 다음으로 이어질 훈련 사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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