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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노트

작성자 사진Jingoo Lee

탕자의 귀향

최종 수정일: 2020년 12월 11일

- 헨리 나우웬

-프롤로그 처음 도입부를 읽으면서 이 책이 헨리 나우웬이 삶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삶의 간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간증은 삶을 통한 아주 거대한 영적인 깨달음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빨리 읽어 내려 가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 말씀을 인간의 삶의 여정에 비추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저자의 의도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여는 글 저자의 삶의 여정 가운데 누군가를 만나 나누는 대화 가운데 영적인 깨달음을 받아 인생의 변곡점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자의 영적 성숙을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아들에서 큰 아들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목적지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갈 저자의 여정이 기다려진다.

- 책을 읽은 후

지금은 책을 읽고 난지 보름 정도 지난 후이다. 책을 읽고 바로 글을 쓸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간격을 두고 길게 남는 여운을 적고자 함이다. 내가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를 접했을 때 모든 관심의 촛점은 탕자에만 있었다. 그리고 탕자의 모습을 나 자신에 비추면서 그와 동질시 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주된 관심의 촛점을 탕자에서 형으로 형에서 아버지로 확대시킨다. 또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며 파헤쳐 이 세 명의 주인공에 비추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관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들도 자신과 같이 그렇게 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구와 가까운지 자신을 들여다 본다. 내 안에는 이 세 사람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 멋대로 행동한 후 주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 누군가를 보면서 쉽게 정죄하고 자기 의에 빠지는 모습, 주님을 닮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사람들을 품는 모습 모두가 보인다. 저자는 무조건 질타를 받아야 하는 작은 아들 안에서도 끝까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놓지 않고 자기 의지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드러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을 우리의 자녀된 신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큰 아들의 연약한 모습에서도 아버지의 사랑과 위로에 감동되어 자신을 돌이켜 그 사랑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모습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주장한다. 아버지는 주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집 나가 방황하는 아들을 항상 사랑하시며 그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끝까지 그 사랑을 놓지 않는 아버지, 형의 안타까운 모습을 이미 아시고 위로하시는 아버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시는 아버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다. 항상 온유함으로 용서하고 위로하며 가슴에 품고 집으로 인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은 아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큰 아들의 강팍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뉘우치고 돌이키는 작은 아들과 아버지의 위로에 다시 돌아오는 큰 아들의 모습을 간직할 것이다. 또한 세상을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상황 앞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아가겠다.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유럽여행 중에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작은 아들만 보았던 것 같다. 지금 사진으로 그 그림을 다시 보니 아버지와 그의 따뜻한 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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