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1. 나는 왜 예수 앞에 나오는가; 오늘날도 두 부류가 예수님 주위를 맴돈다 이 책의 탕자의 비유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점 너머로 향하고 있다. 즉 탕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대변하는 형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제멋대로 사는 죄인이 아니라 매사에 성경의 규정대로 행하는 종교적인 사람들, 즉 도덕적인 내부인이다. 동생의 해로운 자기중심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형의 도덕주의적 삶도 가차 없이 질책한다. 예수님은 종교적 도덕주의를 치명적인 영혼의 병으로 보시며, 우리의 교회가 동생보다 더 형들의 세상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2. 우리도 잃어버린 두 아들처럼 질주한다; 나는 맏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둘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타산하지 않는 사랑과 맏아들의 공공연한 반항에도 놀랍도록 자애로우신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3. 스스로 하나님 노릇한다면 충성했어도 죄다; 죄는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 그 이상이다. 형과 아버지를 갈라놓은 것은 그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이다. 즉 그의 악이 아니라 의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고 이용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힘써 순종하는 게 오히려 그분께 반항하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그분을 통제하고, 자기네 생각대로 그분께 의무를 지운다.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해서 복을 베푸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 것이 스스로 구주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죄란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전적 의지, 전적 순종의 자녀가 되어야 함을 느꼈다.
4. 두려움에 기초한 맹종, 불순종만큼 위험하다; 맏아들도 둘째 못지않게 잃어버린 존재다 형의 순종적 테도는 기쁨이나 사랑 없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두려움과 의무감과 이기심에 기초한 맹종이다 이런 경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뭔가 잘못되면 자신의 삶을 비판하고 죄책감에 빠지며 처참히 무너져 버리며, 메마른 기도생활을 보이고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5. 진정한 형이 날 찾으러 이 땅에 오셨다; 형이 찾아야 하고, 형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자신이 잘한 일들의 동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의의 뿌리까지 회개해야 함을 깨달았다.
6. 이 세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여정이다; 그날에 우리는 아버지 집, 영원한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본래 우리의 집은 하늘 아버지의 임재 안에서만 존재하며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인류를 본래의 집으로 데려 가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예수님은 세상을 다시 우리의 완벽한 집으로 만드실 것이며, 우리는 집에 갈 것이고, 그러면 아버지가 맞이해 끌어 안으시고 우리를 잔치에 들이실 것이다.
7. 아버지 잔치는 이미 시작됐다, 들어가 누리라; 예수 복음은 지금, 여기서의 삶부터 바꾼다. 우리 삶이 예수님의 복음 메시지를 통해 빚어지는 방식으로 잔치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분이 이루신 일을 믿고 그 안에 안식하면 성령을 통해 그분이 우리 마음에 실제로 거하신다. 예수님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과 죄사함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새롭게 해 질병과 빈곤과 불의와 폭력과 고난과 죽음을 종식하시는 것이다. 또한 희생적으로 우리를 섬기신 분을 참으로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도 희생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로 변화될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다. 믿음이 행동으로 변화되지 못한다면 힘써 믿음에 행위를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이해하거나 믿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함도 깨달았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에 깊이 동참하여 사랑과 책임의 견고한 관계를 이루어야만 그 분을 알아 가고 닮아갈 수 있음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생명의 길로 들어가 예수님의 구원에 기초해 살아가면 결국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최고의 잔치와 만찬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도, 섬김, 복음으로 인한 내적 본성의 변화, 치유된 관계 등을 통해 지금도 미리 맛볼 수 있으나 장차 올 일의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직 천국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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