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 남을 판단하지 말라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당시 유대인은 자기들이 할례를 받은 선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은 무조건 죄인이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이라 생각하며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태도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유대인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고 있으므로 결국 똑같이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나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으니 의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식의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결코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곤고(9절) 어렵고 고생스러움.
2:12~16 율법을 행하는 자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유대인에게 율법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의로움을 드러내주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음을 논증합니다. 우리 역시 성경을 많이 읽고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며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2:17~24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함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방인이 보기에 유대인은 그리 존경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대인은 영적인 자만에 빠져 있었고, 이방인도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유대인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 이방인은 유대인이 믿는다는 하나님을 비난하고 비웃게 되었습니다. 현대 기독교 역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 따로, 행동 따로’라면 결국 불신자 사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외치면서 작은 일에 분노하고 이웃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비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2:25~29 표면적 유대인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바울은 표면적으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문화를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사실 신약시대에 새롭게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서에도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며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기록되어 있듯이(삼상 15:22, 16:7), 이는 구약성경 전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에 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았다는 등 표면적인 것에 자기 신앙의 기초를 둘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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